단편

그날의 거리, 그날의 마음

기다림으로 시작된 마음이, 삶이 되기까지

그날의 거리, 그날의 마음의 삽화

겨울이었다.
숨을 내쉴 때마다 흰 김이 흩어지던, 오래 서 있기 힘든 날씨였다.

그녀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.
나는 이미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고,
그 감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깊어졌다.
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.
나를 그저 같은 또래 중 한 사람으로만 대했다.

그녀가 이사를 하던 날,
짐을 나르는 일을 도와주며 집의 위치를 알게 됐다.
그 사실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.

그녀를 다시 보고 싶었다.
그럴 만한 이유를 만들지 못한 채,
나는 학교가 끝나면 그녀의 동네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.

그날은 유난히 추웠다.
가만히 서 있으면 손끝이 저려왔고,
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감각이 무뎌졌다.

정류장에 서서
도착하는 버스를 하나씩 바라봤다.
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
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선을 멈췄다.

아니면,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.

그녀가 타고 있을 것 같은 버스는
쉽게 오지 않았다.

몇 대를 보내고 나면
이제 그만 가야 하나 싶다가도,
다음 버스를 기다릴 이유가 다시 생겼다.

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다.
추워서 힘들다는 생각보다
그녀를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더 컸다.

그리고 결국, 그날
그녀를 만났다.

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
그녀는 잠깐 놀란 얼굴을 하다가
이내 미소를 지었다.

그 순간,
조금 전까지 느끼던 추위가 전부 사라진 것 같았다.

그날은 함께 걸었다.
버스를 타지 않고, 같은 방향으로.

특별한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었다.
짧은 대답과 몇 번의 웃음,
이어지다 끊기는 대화들.

그래도 그 시간은 분명히 따뜻했다.

집 앞에 도착했을 때,
괜히 발걸음이 느려졌다.
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,
끝내 꺼내지 못했다.

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던 순간까지
나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했다.

그날의 거리와 공기,
그리고 그녀의 미소는
오래 남았다.

시간이 많이 흘렀다.

그리고 지금,
그때 그 길을 함께 걷던 사람이
내 곁에 있다.

이제는 내 아이들의 엄마로서,
함께 삶을 나누는 동반자가 되었다.

그날, 아무 약속도 없이 서 있던 그 시간과
추위를 견디며 기다리던 그 마음은
결국 사랑이 되었고,

그 사랑은 지금,
이렇게 평범하고도 따뜻한 일상이 되었다.

2026.10.02 발행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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